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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16 인문학과 IT 사이의 가교 (10)

인문학과 IT 사이의 가교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이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하여 되새겨보곤 한다. 블로그에 쓰는 글들을 제외하면, 내가 쓰는 글들은 대부분 인문학과 관계가 깊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들이다. 혹은 IT 이외의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IT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개념을 쉽게 풀어쓰거나, 혹은 한 박자 늦추어 소개해야 할 때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글들은 이 곳을 찾는 블로거들이 굳이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독자를 블로거로 상정하고 쓴 글이 아니므로 읽어도 재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외부에 기고한 글들을 이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놓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블로그는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내 작업물들을 꾸준히 모아놓아야 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하는 작업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블로고스피어에서, 혹은 웹의 또다른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개념화하고, 그 과정 및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관심을 웹으로 돌아오게 해준다. 또한 담론은 현실과 맞물려있는 것이어서, 각각의 사건들은 어떻게 회자되느냐에 따라 이후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기 마련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수시로 자신의 블로그를 확인하고 하루종일 글을 쓰는 사람들이 "폐인"이나 "중독" 담론으로만 해석된다면 다양한 잠재력들은 그대로 무시되거나 삭제되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내부의 동학을 잘 들여다보고 적절히 맥락화시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문화 번역'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국가 혹은 문화권 사이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사실 인문학과 IT 사이를 오가는 것은 실로 문화 번역의 작업이다. 자칫 잘못하면 어느 쪽으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글들이 나오기 쉽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고, 내가 겨냥한 독자층으로부터만 그럴듯한 끄덕임을 받아도 꽤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로 내가 겨냥하는 독자층은 IT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런 세계도 있어."라면서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재미있어 보인다고 해서 아무 소재나 던져줄 수는 없다.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웹 2.0'이 얼마나 훌륭한지 예찬론을 편다거나, '시멘틱 웹'에 대해서 늘어놓는다거나, '신규 서비스' 런칭 소식을 줄줄이 읊어대면 오히려 고개를 돌릴 것이다. 결국은 이것이 왜 재미있는 사례인지 줄기를 잡고, 의미화하고, 적절한 맥락 속에 위치시켜야만 한다. 예컨대 올블로그는 평판 시스템(reputation system)의 발전의 맥 속에 놓고 이야기하고, FreeBGMCreative Commons의 정신 혹은 그 운동과 연관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문학자들은 흥미를 보일뿐만 아니라 각각의 사이트들을 대단히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렇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면 나로서는 성공한 것이다. (나는 "마이스페이스는 원조교제의 창구"라느니 하는 식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부정적으로 재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정말로 내게 주어진 역할 중의 하나가 인문학과 IT 사이의 가교를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마무리한 원고에서 나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올블로그를 소개하였다. 또 하나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블로그에 올려서 의견이라도 받아볼까나.) 어제의 원고는 내게는 하나의 마침표와 같은 것이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 등 개인미디어를 다루어왔던 그간의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시기가 끝났다. 앞으로 내가 쓸 원고의 핵심들은 1) 일본의 커뮤니티 2) Creative Commons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연구자로서의 태도, 필자로서의 목적은 같다. field만 바뀌었을 뿐.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들은 이와 같은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비록 블로그 독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즉 인문학에 관련된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구조사라도 해볼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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