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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블로그 직원들
블로거들의 네트워크는 우선 정보 교류와 지식 공유의 측면에서 협력적 네트워크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 효과를 체험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신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질문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사람들이 나름의 생각을 남길 것이다. 글이 길어지는 경우 자신의 블로그에 칼럼처럼 긴 글을 쓴 뒤 트랙백(trackback) 정보를 보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적절한 해답에 근접하게 된다. 이것은 블로그의 특징인 개방성과 연결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고, 토론 문화에 익숙하고 정보 공유의 의지가 강한 블로거들이 모여든 결과이기도 하다. 블로고스피어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서로 처음 만난 익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토론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이미 기존의 준거 집단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 -포럼, 카페, 메일링리스트 등- 에만 심도 깊은 토론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물론 블로고스피어에서 만난 익명의 블로거들이 새로운 준거 집단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이 마치 미니홈피에서의 일촌처럼 친밀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제공하는 정보에 충분한 신뢰를 갖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좋은 글’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는 경험이다. 좋은 글은 곧 ‘좋은 블로거’로 이해되기 때문에 블로거들의 공동체 내에서 친구를 얻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 결과 블로고스피어가 성장하면서 공동체 나름의 자기조절 능력이 생겨나고 협동 필터링(collective filtering)이 가능하게 되었다. 토론과 대화와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거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시스템을 이용한 적극적인 피드백(feedback)을 통해 유용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히 자신들이 만들어 낸 커뮤니티를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원하는 욕망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처럼 높은 참여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지역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주민들의 모임 덕분에 마을 전체가 깔끔하게 유지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스템이 발명되고 정착되어 온 과정이 블로고스피어가 성장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립 블로거들, 전문 블로거들, 혹은 적극적인 블로거들이 모여있는 메타사이트인 올블로그를 살펴볼 수 있다. 약 1만 명의 블로거들이 활동하고 있는 올블로그는 각각 떨어져있는 블로거들의 글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이트이다. 실질적으로 이 사이트는 가입자들에게는 자신을 알리는 공간이자 일종의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다. 실제로 초창기에는 소수의 ‘유명 블로거’들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규모가 작을 때와 달리 가입자의 수가 증가할수록 소음이 많아지고 질적으로 훌륭한 글들을 발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수많은 글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글을 선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블로거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올블로그 운영진은 여러 단계를 거쳐 현재의 시스템을 마련하게 되었다. 섬세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지금도 계속 개선이 진행중이다.
먼저 가입자들은 자신의 글에 주제별 키워드를 붙여서 올블로그로 전송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글들은 다른 방문객들에게 읽혀지게 되는데, 매분 갱신되는 신규 게시물들은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필터링된다. 첫째, 가입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글을 추천할 수 있다. 매우 성실하게 글을 썼거나 다른 이들에게 특히 알리고 싶은 글의 경우 ‘나의 추천 글’이라는 글자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별도의 섹션으로 분리되어 노출 빈도가 커지게 된다. 그러나 광고성 글은 올릴 수 없으며, 이 섹션에 자신의 글을 추천하고 나면 이후 48시간 동안은 '나의 추천 글'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한 명의 블로거가 계속 자신의 글을 노출시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둘째, 수집된 글들 중에서 6시간 이내에 조회수와 별점이 높은 글은 ‘실시간 인기글’에 등록된다. 별점 기능은 올블로그에 로그인한 모든 방문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총 6단계로 설정되어 있다. 가장 낮은 점수는 ‘패널티 적용’이며 그 이후로는 자신이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할 경우에 별 1개부터 별 5개까지 부여할 수 있다. 이 결과는 자동적으로 통계화되어 총 10개의 글이 6시간마다 ‘실시간 인기글’로 바뀌어 게시된다. 물론 6시간 내의 인기글 목록도 조회수와 별점의 변화에 따라서 순위가 변동된다. 셋째, 24시간 동안 모인 통계가 합산되어 ‘어제의 추천 글’이 자동으로 분류된다. 역시 조회수와 별점을 기준으로 알찬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을 뽑아내어 메인화면에 공지하는 것이다. ‘어제의 추천 글’은 ‘실시간 인기글’과 비교할 때, 별점의 가중치가 조회수의 가중치보다 더 높다. 이는 조회수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하면 선정적인 글이 추천글로 올라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추천글들은 인기글과는 달리 ‘명예의 전당’에 들어서게 되는데 블로거들은 ‘명예의 전당’을 클릭하면 그동안 놓쳤던 과거의 추천글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올블로그를 찾는 블로거들은 이러한 평판 시스템(reputation system)을 통해 좋은 글을 만나게 되거나 스스로 글의 중요도를 평가한다. 자신이 별점을 부여한 글들은 별도로 관리되므로 이후에도 손쉽게 찾아 해당 블로그를 재방문할 수 있다. 간단한 시스템으로 간주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장치를 마련하기까지는 많은 블로거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필요했다. 이렇게 탄생된 협력적 지식 네트워크는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줄 뿐 아니라 관심사가 같은 친구를 사귀는 것을 돕는다. 자신의 관심 분야를 다루는 블로거, 특히 자신에게 유용한 내용을 전달해 주는 블로거를 찾기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난 블로거들은 ‘번개’를 하거나 별도의 포럼을 열기도 한다. 또는 함께 모여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메타사이트 올블로그 역시 블로그를 통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된 이후 ‘벤처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이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하여 되새겨보곤 한다. 블로그에 쓰는 글들을 제외하면, 내가 쓰는 글들은 대부분 인문학과 관계가 깊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들이다. 혹은 IT 이외의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IT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개념을 쉽게 풀어쓰거나, 혹은 한 박자 늦추어 소개해야 할 때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글들은 이 곳을 찾는 블로거들이 굳이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독자를 블로거로 상정하고 쓴 글이 아니므로 읽어도 재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외부에 기고한 글들을 이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놓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블로그는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내 작업물들을 꾸준히 모아놓아야 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하는 작업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블로고스피어에서, 혹은 웹의 또다른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개념화하고, 그 과정 및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관심을 웹으로 돌아오게 해준다. 또한 담론은 현실과 맞물려있는 것이어서, 각각의 사건들은 어떻게 회자되느냐에 따라 이후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기 마련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수시로 자신의 블로그를 확인하고 하루종일 글을 쓰는 사람들이 "폐인"이나 "중독" 담론으로만 해석된다면 다양한 잠재력들은 그대로 무시되거나 삭제되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내부의 동학을 잘 들여다보고 적절히 맥락화시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문화 번역'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국가 혹은 문화권 사이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사실 인문학과 IT 사이를 오가는 것은 실로 문화 번역의 작업이다. 자칫 잘못하면 어느 쪽으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글들이 나오기 쉽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고, 내가 겨냥한 독자층으로부터만 그럴듯한 끄덕임을 받아도 꽤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로 내가 겨냥하는 독자층은 IT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런 세계도 있어."라면서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재미있어 보인다고 해서 아무 소재나 던져줄 수는 없다.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웹 2.0'이 얼마나 훌륭한지 예찬론을 편다거나, '시멘틱 웹'에 대해서 늘어놓는다거나, '신규 서비스' 런칭 소식을 줄줄이 읊어대면 오히려 고개를 돌릴 것이다. 결국은 이것이 왜 재미있는 사례인지 줄기를 잡고, 의미화하고, 적절한 맥락 속에 위치시켜야만 한다. 예컨대 올블로그는 평판 시스템(reputation system)의 발전의 맥 속에 놓고 이야기하고, FreeBGM은 Creative Commons의 정신 혹은 그 운동과 연관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문학자들은 흥미를 보일뿐만 아니라 각각의 사이트들을 대단히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렇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면 나로서는 성공한 것이다. (나는 "마이스페이스는 원조교제의 창구"라느니 하는 식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부정적으로 재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정말로 내게 주어진 역할 중의 하나가 인문학과 IT 사이의 가교를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마무리한 원고에서 나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올블로그를 소개하였다. 또 하나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블로그에 올려서 의견이라도 받아볼까나.) 어제의 원고는 내게는 하나의 마침표와 같은 것이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 등 개인미디어를 다루어왔던 그간의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시기가 끝났다. 앞으로 내가 쓸 원고의 핵심들은 1) 일본의 커뮤니티 2) Creative Commons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연구자로서의 태도, 필자로서의 목적은 같다. field만 바뀌었을 뿐.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들은 이와 같은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비록 블로그 독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즉 인문학에 관련된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구조사라도 해볼까 싶다. ^-^)